Changer Docs
Search…
들어가며
외환과 암호화폐, 두 시장은 어떤 특성이 있으며 왜 만나야 하나?

외환시장의 규모와 구조

국제청산은행(BIS)이 매 3년마다 발표하는 전세계 외환 거래 규모는 2019년 4월 현재 하루 6.6조달러(7,788조원)에 달한다. 이는 2019년 1분기 현재 전세계 일 평균 주식 거래액 2,650억달러(312.7조원)의 25배에 달하며 전세계 모든 금융 자산을 통틀어 압도적인 1위의 거래 자산이다.
USD(미국 달러)가 88.3%의 점유율(한 쌍의 거래에는 반드시 2개 화폐가 존재하므로 개별 화폐 점유율을 따지면 총합이 100%가 아닌 200% 임)로 독보적인 1위 거래량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EUR(유로)가 32.3%의 점유율로 2위, JPY(일본 엔)가 16.8%로 3위, 그리고 GBP(영국 파운드)가 4위(12.8%), 그 다음으로 호주, 캐나다, 스위스, 중국, 홍콩, 뉴질랜드 순으로 10위권 안에 위치해 있다.
오늘날 외환 시장의 구조는 아래 그림과 같다. 맨 위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와 유럽중앙은행(ECB) 같은 각국 중앙은행들이 있고 그 밑으로 중앙은행과 직접 거래하는 대형은행(빨간색 상자)들이 있다. 각국의 시중은행(초록색 상자)들은 자국 기업들을 대신해 자국 내 은행 간, 또는 글로벌 대형은행과 거래한다. 각 국가의 시중은행들 밑으로는 소규모의 환전상이나 온라인 브로커들이 있고, 이들을 통해 개인들도 외환 시장에 참여할 수 있다.
당연히 맨 위에 중앙은행과 직접 거래하는 대형은행(빨간 상자)이 가진 환율과, 가장 아래 개인들이 거래하는 환율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같은 시각에 거래하더라도 여러 단계를 거쳐 내려오면서 이미 각자의 이윤이 많이 붙어 있다. 우리가 여행갈 때 은행에 가서 환전하게 되면 외환을 살 때와 팔 때 가격 사이에 격차가 있다. (예를 들어 2020년 10월 28일 현재 한국 하나은행 기준 USD/KRW 살 때 팔 때 가격 차이는 3.56%다.) 하지만 대형은행들이 서로 거래할 때는 살 때와 팔 때 가격 차이가 거의 없다. (아래는 같은 시각 은행 간 가격. 도쿄 시장에서 EUR/ USD 거래쌍의 살 때 팔 때 가격차는 제로(0)다. USD/KRW와 EUR/USD는 거래쌍이 달라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은행간 가격이 소비자 가격보다 훨씬 좋다는 점은 어느 거래쌍에서나 동일하다.)
위 그림에서 볼 수 있듯 소수점 아래 다섯 자리 단위의 정교한 거래가 전세계 은행과 기업들, 그리고 개인들 사이에서 전세계 180종의 통화에 대해 24시간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또한 현물(Spot) 시장보다 훨씬 더 큰 선물(Futures)과 스왑(Swap) 시장에서 통화 기반 파생상품이 활발히 거래된다. 이것이 바로 외환이 주식이나 채권을 가볍게 제치고, 하루 6.6조달러나 거래되는 압도적 1위 금융 자산인 이유다.
물론 다른 금융 자산과 마찬가지로 외환도 알고리즘에 의해 기계가 거래하는 비중이 점차 커지고 있다. 국제청산은행(BIS)은 2011년 9월 현물환(Spot) 시장에서의 프로그램 매매 비중을 연구해 발표했는데, 당시 전체 일일 현물환 거래액 1조 5,900억달러(1,812조원) 중 24.7% 인 3,930억달러(448조원)이 프로그램에 의한 자동 매매였다. 하지만 그것도 이미 9년 전 자료이고, 일일 외환 거래액이 2010년 기준 4.1조달러(4,674조원)에서 2019년 4월 기준 6.6조달러(7,524조원)로 60% 이상 상승한 점을 감안하면 오늘날 프로그램에 의한 자동 매매액은 훨씬 높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디지털화폐 시장의 규모와 구조

2020년 8월 23일 현재(5PM UTC, Coingecko 기준) 디지털화폐 시장의 시가총액은 3,750억달러(427조원)이며, 하루 거래액은 740억달러(84.4조원)이다. 총 5,859개의 디지털화폐가 존재하나 실제 이날 하루 100만달러 이상 거래된 디지털화폐는 총 487종, 10만달러 이상 거래된 디지털화폐는 1,205종이었다.
외환 시장에서 상위 10대 통화가 전체 법정화폐 거래액의 88.45%를 차지한 것과 유사하게 디지털화폐 시장에서도 이날 상위 10대 디지털화폐가 전체 디지털화폐 거래액의 82.87%를 차지했다. 주지할만한 점은 하루 거래액이 가장 많은 디지털화폐는 Bitcoin이 아닌 Tether라는 사실이다. Tether는 1달러와 같은 가치를 갖는 것을 목표로 설계된 디지털화폐로, 가치 변동이 비교적 일정하다는 점에서 이른바 ‘스테이블코인’이라 불린다.
이날 Tether는 Bitcoin의 1.68배에 달하는 300억달러(34.2조원) 가량 거래되었다. 이는 디지털화폐 세계에서도 여전히 기축통화는 Bitcoin이 아닌 미국 달러(USD)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Bitcoin의 거래액이 180억달러(20.5조)로 바짝 뒤를 쫓고는 있으나, Tether는 디지털화폐 시장에서 가격 변동성에 노출되는 것을 회피하는 동시에 개인 지갑이나 거래소, 다른 시장 참여자에게 가치를 전송하는 수단으로 USD를 대신해 널리 이용되고 있다.
법정화폐의 세계에서 각국 중앙은행이 자국 화폐에 대한 통화 정책을 통제하는 것과 유사하게 디지털화폐 세계에서는 미리 설정된 알고리즘에 의하여, 또는 디지털화폐를 운영하는 재단 또는 회사에 의하여 통화의 추가 발행이나 소각, 이자율 등 통화 정책이 정해진다. 여기에는 DAO(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 탈중앙화된 자율 조직)라 불리는 독특한 운영 형태도 있는데, 디지털화폐 보유량에 비례해 투표권이 주어지고 이들의 투표로 통화 정책을 비롯한 모든 운영 방침이 결정된다.
위 그림은 2020년 1월 체인파트너스가 Bloomberg Terminal을 통해 배포한 디지털화폐 시장의 전체 구성도다. 빨간색이 거래자들이고 빨간 색 중 왼편에 있을수록 기관 성격을, 오른쪽에 있을수록 개인 성격을 띈다.
오른쪽에 있는 개인들은 개인용 거래소(Retail Exchange)에서 거래하며, 대표적으로 Binance, Huobi, BitMex, Deribit 같은 거래소들이 있다. 이들은 디지털화폐 현물(Spot)은 물론 선물(Futures), 옵션, 스왑(Swap) 등 다양한 파생상품 거래도 제공한다. 또한 디지털화폐 예금과 대출, 자산운용 등 디지털화폐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금융 서비스를 통합 제공한다.
왼쪽에 있는 거래자들은 기관을 전문으로 상대하는 거래 상대방과 거래한다. 대표적으로 디지털화폐 OTC(Over-the-Counter, 장외) 거래 회사들이 있다. 이들은 주로 디지털화폐 거래소나 채굴자, 디지털화폐 결제 서비스, 헤지펀드, 패밀리오피스(고액자산가의 자산을 관리해주는 회사) 등을 고객으로 두고 디지털화폐 거래 서비스를 제공한다.
개인용 거래소와의 큰 차이라면 직접 딜링을 한다는 점이다. 개인용 거래소는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 사이를 중개만 하고 수수료를 받는 모델 이지만 기관들이 쓰는 OTC 회사들은 중개하지 않고 직접 기관들의 거래 상대방이 되어 준다. 즉, 파는 사람이 오면 군말없이 즉시 사주고, 사겠다는 사람이 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즉시 내어준다.
그러다보면 어떨 때는 팔기 싫을 때 팔아야 하는 날도 생기고, 사기 싫은데 사야하는 경우도 생긴다. 하지만 이런 거래를 24시간 정확히 해주어야만 기관들이 믿고 쓸 수 있게 된다. 그런 점을 잘 아는 디지털화폐 OTC들은 365일 24시간 고객이 원할 때 언제든 고객이 원하는 만큼의 주문을 받아주는 성실한 거래 상대방이 되어주고 있다.
이들 OTC 회사는 일반적으로 기관들에게 하루짜리 신용을 제공한다. 그 덕에 기관은 개인과 달리 디지털화폐를 가지고 있지 않아도 팔 수 있고, 당장 달러가 없어도 디지털화폐를 살 수 있다. 물론 하루가 지나 정산할 때는 반드시 약속한 디지털화폐나 달러를 가지고 와야 거래의 결과로 고객이 보유하게 된 디지털화폐와 달러를 내어준다.
신용은 OTC 회사가 직접 제공하기보다 중간에 신용만 제공하는 큰 기관을 끼기도 하는데, 이들을 프라임브로커라 부른다. 전통 금융 시장에도 기관에게 신용을 내어주는 프라임 브로커가(주로 증권사들이 그 역할을 한다) 존재하는데, 기관 디지털화폐 금융 시장에서도 유사한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디지털화폐를 직접 보관하기 부담스럽기 때문에, 많은 기관들이 BitGo나 Coinbase Custody와 같은 3자 수탁(Custody) 서비스를 이용한다. 의미있는 현상은 개인들이 디지털화폐를 맡겨 놓은 거래소들이 현물 거래를 시작으로 파생상품 거래, 예금(Staking), 대출(Lending), 운용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는 것과 유사하게, 기관 시장 역시 수탁을 기초로 사업이 확대되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디지털화폐 시장의 업계 1위 기관용 수탁사인 BitGo는 기관들이 맡겨 놓은 막대한 디지털화폐를 바탕으로 기관들에게 예금과 운용 상품을 판매하기 시작했으며, 자사 고객들 간의 결제/청산 서비스, 그리고 디지털화폐 거래 서비스까지 출시해 기관을 위한 종합 디지털화폐 금융 플랫폼으로 발전해가고 있다.
위 도표에서 맨 아래 빨간색 시장참여자는 디지털화폐 결제 서비스들이다. 아직 결제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크로스보더 시장에서 큰 경쟁력이 있는 만큼(우리는 아래 3장과 4장에서 자세히 다룰 것이다) 앞으로 커질 소지가 상당한 분야다. 이들 디지털화폐 결제 서비스와 더불어 기관 고객들이 개인 고객과 다르게 중요하게 여기는 거래 조건은, 거래 단가를 미리 확정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우리가 상점에서 결제할 때 정확한 가격을 모르고 사는 경우는 없다. 하지만 디지털화폐 가격은 계속 변하고 있으므로, 디지털화폐를 결제에 쓰기 위해서는 가격을 미리 정해야 한다. 기관 OTC 시장의 건당 최소 거래금액은 보통 5만달러다. 최대 거래금액은 건당 수천만달러에 이르기도 한다. 이렇듯 개인과는 거래금액의 차이가 커서, 앞서 결제 서비스와 마찬가지로 가격을 미리 정해 놓고 거래하는 것은 기관에겐 중요한 문제다. 거래를 마친 후에야 비로소 내가 거래한 가격을 아는 것은 수백만달러를 한 번에 거래하는 기관 입장에서는 상당한 리스크다.
보통 개인 디지털화폐 시장은 수요와 공급, 즉, 살 사람과 팔 사람이 만나 서로 가격을 부르는 양방향 호가를 한다. 반면 기관 OTC 시장은 딜러가 가격을 부르고, 거래자들은 이 가격에 수긍해 거래가 체결되는 일방향 호가를 한다.
증권거래소와 은행의 차이라 생각하면 쉽다. 증권거래소에서는 사자(bid)와 팔자(ask)의 가격에 따라 현재가가 실시간으로 변하지만, 은행에서 환전할 때에는 고객이 환율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 은행은 환율을 고시하고 고객은 그 가격에 환전할지 안할지만을 선택할 뿐이다. 디지털화폐의 개인과 기관 거래 시장이 바로 증권거래소와 은행의 모습을 꼭 닮았다.

두 시장은 무엇이 유사한가?

1) 완전히 탈중앙화된 24시간 글로벌 거래 시장

주식의 경우 각국 증권거래소가 있고 기관이든 개인이든 여기 모여 거래한다. 물론 요즘은 대부분의 거래가 온라인으로 이루어지지만, 각 증권사 앱을 통해 발생한 주문은 중앙집중식으로 거래소로 보내져 체결된다. 시장이 열리는 시간이 거래소에 의해 정해져 있고, 그 시간이 지나면 하루 장은 마감된다. 등락이 급격할 때 거래소는 사이드카나 서킷브레이커 같은 통제장치를 발동해 과열된 투자 심리를 완화시키기도 한다.
사이드카는 주로 선물시장의 가격 급등락을 통제하기 위해 한국 등 일부 국가의 선물거래소에서 도입한 일종의 보호장치다. 사전에 지정된 등락 변동성을 초과한 상태로 선물시장이 일정 시간 지속되면 사이드카가 발동돼 프로그램 매매가 일정 시간 동안 중단된다. 프로그램 매매만 제한되기 때문에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지만 상하로 과열된 시장을 (주로 급락을) 일시적으로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다.
서킷브레이커는 주가의 급격한 하락을 통제하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도입한 사이드카보다 강력한 보호장치다. 현물시장이 전 거래일 대비 일정 수치 이상 하락한 상태로 일정 시간 이상 지속될 때 과도한 투매를 차단하기 위해 현물시장은 물론 파생상품 시장까지 일정 시간 동안 거래를 전면 중단한다. 거래 중단 조건과 시간은 국가와 거래소, 발생 상황 별로 각기 다르다.
하지만 외환 시장은 다르다. 모든 거래자들이 한 장소에 모여 거래하지 않는다. 크고 작은 은행부터 대/중소기업, ATM, 환전소, 호텔, 카지노, 동네 환전상에 이르기까지 환전은 여러 장소에서 이루어진다. 거래가 시작되고 끝나는 시간도 정해져있지 않으며, 24시간 전세계 다양한 도시에서 환전은 계속 된다. 환율이 급변한다고 누가 나서서 5분간 전세계에서 거래를 멈추자고 제안하지도, 지시할 수도 없다. 혹여 누가 그런 지시를 내린다고 말을 들을 의무도 아무에게도 없다.
디지털화폐 역시 외환과 마찬가지다. 24시간 거래되며 전세계 어디에서나 거래된다. 누구나 거래소를 열 수 있으며 아무도 디지털화폐 가격이 급변한다고 거래를 중단시킬 힘도 권한도 없다. 혹여 특정 거래소가 그런 정책을 만든다 한들, 거래소는 전세계에 너무 많기 때문에 모두가 거래를 멈추지는 않는다. 물론 상대적으로 높은 점유율을 가진 대형 거래소가 존재하지만, 그들이 해킹을 당하거나 거래를 멈춘다고 전세계가 거래를 중단하지는 않는다. 대안은 얼마든지 있고 거래는 다른 곳에서 계속된다. 따라서 완전히 탈중앙화, 파편화되어 24시간 전세계에서 거래 된다는 점에서 외환과 디지털화폐는 서로 닮아있다.

2) 거래 금액의 제한이 없는 자유도 높은 시장

요즘에야 주식도 일부 국가에서 일부 증권사를 통해 1주 단위가 아니라 소수점 단위로 쪼개 살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채권이나 선물, 옵션 등 전통적인 금융상품에는 거래나 계약 단위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시카고선물거래소(CME, Chicago Mercantile Exchange)의 인기 거래 상품 중 하나인 크루드 오일 선물은 1,000배럴(약 15.9만리터) 단위로만 거래할 수 있다. 1배럴이나 10배럴 단위로는 거래할 수 없다. (세계 최대 상품 거래소인 CME에서 거래 가능한 모든 상품은 다 정해진 계약 단위가 있다.
이렇게 거래 단위를 표준화시켜 놓는 이유는 거래를 간편하게 해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함이다. 사람들이 거래하는 단위가 서로 다르다면 내가 파는 양만큼 살 사람을 하염없이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 (예컨대 350배럴를 팔려는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은 정확히 350배럴 사려는 사람을 찾거나 100배럴 살 사람 세 명과 50배럴 살 사람 한 명이 동시에 모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얼마나 불편하고 혼란스러운가?)
하지만 외환 시장은 거래 단위의 제한이 없다. 물론 처음에는 있었다. 중앙은행과 대형은행끼리 전화로 외환 거래를 하던 1980년대 이전에는 위와 같은 거래 편의성 문제로 최소 거래 단위가 100만달러였다. 5만달러나 5천달러를 가지고는 동네 은행에서 다른 돈으로 환전은 가능했지만 은행간 외환 거래에 참여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90년대 들어 전자 거래의 발달로 최소 거래 금액 제한이 점차 무의미해지게 되었다. 개인이나 중소기업을 상대로 외환 거래를 중개하던 온라인 업체들은 작은 규모의 거래자들끼리 서로 거래시키거나 작은 거래 몇 개를 큰 거래 하나로 묶어 상위 레벨의 은행들과 거래시켰다. 이 과정이 점차 자동화되자 개인이나 중소기업도 각자가 속한 국가의 외환 규제를 준수하는 선에서 활발히 외환을 거래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거래 금액의 크기가 다른 만큼 개인의 거래 환율이 은행 간 거래 환율보다 좋기는 대체로 어렵다. 앞서 언급한 도매 가격과 소매 가격의 차이라 생각하면 쉽다. 하지만 이제 개인도 고작 100달러나 1,000달러만 가지고도 외환 거래에 참여할 수 있게 된 점은 명백히 기술의 발전이 가져온 획기적 변화다.
거래 규모의 제한이 없는 것은 디지털화폐도 마찬가지다. 기관을 상대로 하는 OTC 회사는 보통 건 당 5만달러 이상 거래해야 하지만 그보다 훨씬 작은 단위를 거래하는 개인들도 어렵지 않게 자신에게 적합한 거래 환경을 찾을 수 있다. 이는 주식이나 채권, 파생상품 등 여타 투자상품 대비 디지털화폐와 외환 시장의 진입 장벽이 상대적으로 낮음을 시사한다.

3) 기초자산(Underlying asset) 없이 오직 상대 가치(환율)만 존재하는 시장

주식이나 채권, 선물, 옵션, ETF, ETN 등 전통 금융자산은 모두 기초자산이 있다. 주식은 회사의 소유권이고 채권은 회사에 빌려준 대출이다. 선물은 미래 특정 시점에 특정 조건으로 거래할 계약을 미리 해놓는 것이고, 옵션은 미래 특정 시점에 거래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권리만 오늘 미리 거래하는 것이다. 금이나 부동산은 말할 것도 없고 인류 역사상 존재하는 거의 모든 금융자산이자 투자상품은 하나같이 거래의 목적이 되는 기초 목적자산이 있다.
하지만 지구상에서 딱 두가지 금융자산만 기초자산이 없으니 그게 바로 외환과 디지털화폐다. 물론 외환도 과거 브레튼우즈 체제 시절에는 기초자산(35 USD를 가져오면 미국 중앙은행-연방준비제도-이 금 1온스를 내어줌)이 있었다. 하지만 세계 경제가 발전하며 화폐 수요가 높아지자 더 이상 금에 연동해 놓은 화폐로는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기 어려웠다. 이에 1971년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금 태환 중단을 선언하게 되고, 마침내 지구 상 어떤 화폐도 추종하는 기초자산이 없는 상대 가치의 시대가 시작된다.
앞서 살펴보았듯 전세계 외환 거래의 88% 이상(총 200% 기준)을 차지하는 미국 달러는 오늘날 외환 시장에서 굳건히 기축통화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전세계 대부분의 화폐는 미국 달러와의 상대 가치가 24시간 변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투기 목적 투자자, 차익거래 목적 투자자, 그리고 헤징(hedging)거래 목적 투자자 등 여러 시장 참여자가 활발히 미 달러와 반대편 통화를 거래하며 환율 변화로 수익을 얻거나 잃고 있다. 이들이 수익을 추구하는 탐욕스런 거래 활동은 전세계 통화의 유동성을 풍부하게 한다. 유동성이 풍부하다는 말은 누구든 언제나 거래를 원할 때 다른 돈으로 바꿀 수 있다는 의미다. 이는 통화의 신뢰 확보에 큰 도움이 된다.
디지털화폐도 외환 시장과 유사하다.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등 인기 많은 블록체인은 네트워크 활성화로 해당 디지털화폐 수요가 신규 공급을 추월함으로써 가격이 오를 수 있다는 설계가 포함되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런 설계는 통화정책일 뿐, 본질적으로 기초자산을 보유하거나 추종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디지털화폐의 가치도 외환과 마찬가지로 오직 상대적으로 표시된다. 2020년 10월 28일 6PM UTC 현재 1 BTC의 가치는 13,195.72 USD(- CoinMarketCap 기준)다. 같은 시각 13,195.72 USD에 대한 일본 엔화의 가치는 1,376,577 JPY(Integral OCX 기준)다. 1,376,577 JPY 로는 다시 1.00026812 BTC를 살 수 있다(Liquid.com 기준). 이 모든 ‘가격’은 오직 서로에 대한 상대 가치로 정해진다.
4) Bid/Ask 2-Way Quotation
외환 시장에서는 ‘EUR/USD’와 같이, 디지털화폐 시장에서는 ‘ETH/BTC’처럼 서로 다른 두 통화가 쌍을 이뤄 거래되며 이를 거래쌍(Trading Pair)이라 부른다. 각각의 거래쌍에는 기준통화(왼쪽에 위치)와 상대통화(오른쪽에 위치)가 존재하며, 기준통화 한 단위와 같은 가치를 갖는 상대통화의 수량을 ‘환율’이라 부른다. (ex. EUR/USD = 1 EUR와 동일한 가치를 갖는 USD의 수량, ETH/BTC = 1 ETH와 동일한 가치를 갖는 BTC의 수량)
환율은 기준통화를 팔고 상대통화를 살 때와 기준통화를 사고 상대통화를 팔 때 가격이 조금씩 다르며, 이 가격은 24시간 내내 계속 바뀐다. 살 때(bid), 팔 때(ask) 가격이 서로 다르게 호가(가격 제시)된다고 하여 이를 ‘양방향 호가(2-way Quotation)’라 부른다.
Binance 등 주로 개인을 상대로 하는 리테일(개인을 주로 상대하는 회사를 금융업에서는 Retail이라 부른다) 거래소와 달리 기관을 주로 상대 하는 디지털화폐 OTC 시장에는 거래 수수료가 없다. 하지만 살 때와 팔 때 제시되는 가격의 차이가 바로 이들 OTC 회사들의 수익이 된다. 이 미묘한 가격 차이를 ‘스프레드(Spread)’라 부른다.
위 그림은 디지털화폐 OTC 거래 시장에서 실제 호가되고 있는 예시다. 왼쪽 ETH/BTC 거래쌍에서는 고객이 ETH를 팔고 BTC를 사거나, ETH를 사고 BTC를 파는 거래를 할 수 있다. 이때 OTC 회사는 고객이 14.00 BTC를 팔 때(즉, 고객이 14.00 BTC어치 만큼의 ETH를 살 때) 1 BTC당 0.03351 ETH의 가격으로 사겠다고 호가하고 있다. 만약 고객이 14.00 BTC를 사는 경우(즉, 고객이 14.00 BTC어치 만큼의 ETH를 팔 때) 1 BTC당 0.03313 ETH의 가격에 팔겠다고 호가하고 있다. 살 때 가격(0.03351)과 팔 때 가격(0.03313)의 작은 차이 0.00038이 바로 OTC 회사의 수익이 된다. 위 오른쪽 그림은 XRP와 USDT를 서로 살 때, 팔 때의 가격이다.
외환 시장도 디지털화폐와 동일하게 살 때와 팔 때 가격이 24시간 내내 양방향 호가(2-way Quotation) 되고 있다. 외환 시장에서도 살 때와 팔 때의 호가 차이에 이미 수익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별도로 거래자가 내야 하는 수수료는 없다. 만약 고객이 10,000 USD를 사자마자 다시 되판다고 상상해보자. 그러면 살 때와 팔 때의 가격이 조금 다르기 때문에 대체로 약간 손해를 보게 되며, 그 손해만큼이 호가를 부른 거래 상대방(디지털화폐의 경우 OTC 회사, 외환의 경우 은행이나 브로커)의 수익이 된다.
고객 입장에서는 24시간 언제든 내가 원할 때 원하는 양만큼의 거래를 받아주는 거래 상대방이 있다는 점이 외환과 디지털화폐 시장 모두에서 거래를 원활하게 만든다. 우리가 은행에 가면 영업 시간 이내일 경우 전국 어느 지점이든 내가 원하는 화폐로 원하는 양만큼 환전할 수 있다는 신뢰가 있다. 만약 은행이 마음내킬 때만 환전해 준다면 당장 여행이나 출장을 가야하는 경우 얼마나 불편하고 불안할까?
금융 시장에서는 고객이 거래를 원할 때 반드시 거래에 임해 거래 상대방이 되어 주는 회사를 시장 조성자(Market maker)라 부른다. 디지털화폐 시장에서는 OTC 회사, 외환 시장에서는 은행이 보통 이런 역할을 수행한다. 독자적인 시장 조성 여력이 없는 경우 시장 조성만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에 하청이나 외주를 주는 경우도 있다.
시장 조성을 하는 업체들은 일반적으로 가격의 미래 향방에 대한 각 업체들만의 전망을 가지고 고객으로부터 사들인 포지션을 계속 가져갈지, 즉시 없앨지, 그 비율을 어떻게 할지 정하게 된다. 이렇듯 나름의 트레이딩 전략과 시장에 대한 관점을 가지고 회사의 이익 극대화를 추구한다 는 점이 단순히 살 사람과 팔 사람을 중개하고 그 중개 수수료만 받는 ‘브로커’ 활동과 구분해 ‘딜러’라 표현한다.
이처럼 시장 조성자들이 24시간 디지털화폐와 외환 시장 모두에서 가격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고객들은 언제든지 원할 때 거래할 수 있는 것이다. 시장 조성자는 종종 특정 화폐나 디지털화폐를 갖고 싶지 않을 때에도, 고객이 원하면 포지션을 받아야 한다. 따라서 그들이 사자와 팔자 가격을 약간 벌려 취하는 스프레드 수익에는 리스크 비용도 포함되어 있다.
개인들이 거래소에서 만나 서로 가격을 흥정하며 거래하는 모습과는 다르게, 기관들이 거래하는 행태는 24시간 시장 조성자들에 의해 살 때 팔 때 가격이 일방적으로 호가된다. 이렇듯 기관 거래에 있어 판박이처럼 닮은 디지털화폐와 외환 시장의 호가와 거래 방식이 Changer가 양 쪽 시장이 쉽게 연결돼 거래될 수 있다고 보는 핵심적인 이유다.
Copy link
On this page
외환시장의 규모와 구조
디지털화폐 시장의 규모와 구조
두 시장은 무엇이 유사한가?